INTERVIEW

『살육의 천사』 제4화가 공개되기 전에 잡지에 실렸던 사나다 마코토님의 인터뷰입니다. 창작의 원점에 주목하면서 『살육의 천사』에 활용된 연극의 경험 등이 언급된 심도 있는 내용으로 화제가 되었던 글입니다.

『살육의 천사』 제작비화

――이번에 제작하신 『살육의 천사』(이하, 살천)가 전작인 『이슬비가 내리는 숲』(이하, 이슬비)에 이어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플레이했다는 감상도 많이 보내 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전작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이번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이슬비』를 한창 만들 때 제작을 잠시 중단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구상했습니다. 처음엔 여자아이가 살인귀가 도사리는 빌딩을 올라가는 상황을 떠올리고(주1), 거기서부터 이야기에 살을 붙여 나갔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잭이 웃는게 지금보다 조금더 빈정거리는 느낌이 있던 캐릭터였다던가, 대니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위치였거나 하는 식으로 지금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깊이가 더해갔어요.

주1:기억에 없는 차가운 방에서 눈을 뜬 레이첼은,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님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이 건물에서 탈출하기를 결심하고 위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아직 알지 못한 채….

――이번에도 호러 게임인데, 이 장르에 특별한 애착이라도 있으세요?

어쩌다보니 호러 게임이 이어졌는데(웃음), 호러는 저도 좋아하는 장르에요. 우선, 픽션인데도 불구하고 공포라는 리얼하고 생생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지요.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다른 장르의 이야기에서는 그려내기 힘든, 인간의 깊은 부분에 있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대니나 캐시 같은 사이코 킬러를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장르가 호러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번 작품인『살천』에서는 게임자체나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B2 플로어에 있는 교회의 도트화나 마녀재판(주2) 등에서 볼 수 있는 매력적인 표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굉장히 기쁩니다. 마녀재판 장면은, 사실 RPG 츠쿠루의 사용법을 많이 연구한 결과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슬비』 때는 RPG 츠쿠루의 사용법을 잘 모르는 채로 만들어서, 처음 반년동안은 고작 초반 도서관 장면을 절반 정도 밖에 완성을 못했었죠. 그때와 비교하자면 많이 늘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요즘엔 연출에 시간을 쏟거나 도트를 찍는데 공을 들이는 바람에 작업 페이스가 느려지는 게 고민입니다.(웃음).

주2:B2 플로어의 교회와 그레이의 마녀재판. 그 외에도 게임에 출현하는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배경과 연출도 사나다 마코토씨의 작품이 가진 매력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이어진 창작의 날들

――이번엔 두 작품이 계속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작가로서의 사나다씨에 대해 파헤쳐보려 합니다.

이런…. 긴장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어릴 적부터 창작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요?

이야기를 만들게 된 건, 아마 서너살 정도의 나이때일 겁니다 . 아버지가 잠들기 전에 즉흥적으로 만든 이야기를 해 주셨고, 나도 그것에 참가하곤 했었죠. 책을 읽기 시작한건 어린이집 시절부터 였습니다. 그림책을 굉장히 좋아해서 어린이집 때 쓴 장래희망에 대한 작문을 보면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적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아동 문학 작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죠.

――실제로 이야기를 창작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본가에서 운영하는 가게의 신문 코너에 직접 만든 그림책을 끼워 넣었던 추억이 있습니다(웃음). 곰 인형 이야기인데, 가게에서 만난 귀여운 여자아이가 자신을 사줬으면 했는데, 아저씨에게 팔려버리는거죠. 그래서 곰 인형이 혼자 울고 마는데, 그날은 크리스마스이고, 실은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선물로 산 것이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아이가 생각한 이야기인데 결말이 제대로네요(웃음).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읽었줬으면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내가 본 꿈을 종이에 적어뒀습니다. 잠이 깨도 꿈을 기억하고 있고, 심지어 다음에 꿈을 이어서 꿀 수 있는 체질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본 장편 판타지 같은 꿈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사실은 제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도 꿈을 꾸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깨웠던 기억이지요. 저에게 있어 꿈은 아주 의미가 큰 존재일지도 모르겠어요.

――그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창작을 했나요?

사실……, 조금 부끄럽지만 어릴 때 부터 써왔던 창작 노트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걸 보면, 초등학생 때 장편 스토리만 8개 완성했던걸 알 수 있죠.

――엄청 많네요(웃음).

그 외에도 만들다가 만 작품이나 단편을 이것저것 만들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에 썼던 판타지 작품을 보면 역시나 부끄럽지만(쓴웃음), 창작이 계속 좋았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소녀만화풍 소설부터 시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림책도 만들었고, 사람을 모아서 호러 영화를 만들기도 했었네요.

――당시의 “대표작 ”은 있는지?

대표작은(웃음)……, 고등학교 때 연극부에 들어갔는데요, 제가 쓴 각본이 채택돼서 고등부 연극 콩쿠르에서 희곡상을 받았습니다. 덫에 걸린 토끼를 늑대가 발견하면서 시작하죠. 토끼는 죽고 싶어 하지만, 늑대는 건강하게 뛰어다닐 수 있게 되면 잡아먹겠다고 약속한 뒤, 매일 먹이를 물어다 주는거에요. 그렇게 둘은 묘한 관계가 되어가고, 어느 날 덫을 놓은 사냥꾼이 찾아 오면서… 그런 이야기입니다.

――왠지, 『이슬비』와 『살천』처럼 주인공 두 사람의 ‘약속’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이것 말고도 약속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아마도 제 안에, 두 사람이 주고받는 ‘약속’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강한 의지가 있고, 그것이 서로에게 일치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마치 기적같다고 느껴지니까요. 그리고 저는 분명, ‘두 인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좋은 겁니다(주3). 스가군과 시오리도 그렇고, 잭과 레이도 그렇고. 정신을 차려보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만 만들고 있다.

주3:『이슬비가 내리는 숲』과 『살육의 천사』. 두 작품 모두, 시오리와 스가, 레이첼과 잭 두 사람의 관계가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리고, '약속'이라는 키워드도 사나다 마코토씨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래도 그 관계라는 것이 꼭 연애가 아니라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죠.

물론 연애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다만, 제 마음 어딘가에선, 예를 들자면 설령 연인 사이라고 해도 인간에게는 연애 감정까지도 뛰어넘은 지점에서 성립하는 강한 유대감이 있을 것이다, 하는 그럼 마음이 있어요. 그것을 이야기 속에서 증명하고 싶다, 고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연극의 경험이 게임에서 살아나다.

――정말 창작으로 채워진 인생이라는 느낌이 듭니다(웃음)

그런데, 대학 시절에는 창작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실은, 희곡상을 받은 걸 계기로 대학에 진학해서 연극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큰 도시의 대학에 와서, 갑자기 주변에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거나, 강의나 친구의 ‘문학론’에 접하면서 그저 아무 생각없이 창작에 몰두하는게 불가능해진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쓴 몇몇의 희곡이 상영도 했었고, 취업 담당 선생님께 계속해서 글을 쓰는 진로를 추천받기도 했지만, 결국 연극과는 관계없는 곳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료 게임을 만나게 된 것은 그 후인가요?

 아닙니다. 실은 어릴 때부터 게임을 정말 좋아해서 지금도 많이 플레이하고 있어요. 무료 게임도 대학 친구가 알려줘서 계속 즐기고 있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간 뒤에도, 저는 계속 자신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극단 소속도 아니면서 희곡을 쓰고 있거나, 아동 문학을 써 보거나, 심지어는 액세서리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조금 부끄럽네요(웃음). 그러던 중에 동영상 사이트에서 『아오오니』를 만난겁니다.

――RPG 츠쿠루로 제작한 명작 호러게임이죠.

보자마자, ‘와…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록 타워』나 『콥스 파티』 같은 호러 게임도 좋아했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좋아했던 연극은 이야기도 음악도 조명도 있어서 여러 가지 표현방식으로 구성이 되는데, 게임도 그런건 같았어요. 연극을 그만뒀을 때, 무대 감독이 가지고 있는,, 개성 있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이끄는 강한 실행력 같은게 나한텐 없구나.... 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무료 게임은 혼자서 만드니까, 나 혼자서 그런 표현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게임은 자신이 조작해서 체험할 수도 있는거니까요.

――그렇게 『이슬비』가 탄생하게 된 건가요.

제작 자체는 처음에도 말했듯이 정말 힘들어서, 반년 정도 지났을 때 포기하고, 다른 창작 작업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래도 컴퓨터에서 파일을 지우지 않고 놔뒀었죠. 그 뒤로 일 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문득 오랜만에 게임을 실행해 보니까, 사쿠마와 캐릭터들이 게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아…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완성시키지도 않고, 창작 같은 걸 계속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그로부터 1년을 들여서, 퇴근 후에 RPG 츠쿠루를 마주하면서 『이슬비』를 완성시켰습니다.

――연극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떠올랐는데, 『살천』에서는 배경이 붉게 물드는 표현이 있었죠.

그렇습니다. 이번 작품에는 연극적인 표현을 마음껏 사용해 봤어요. 예를 들면, 에디의 플로어에서 잭이 레이를 위해서 벽을 부수는 장면에서는, 암흑 속에서 둘만 돋보이게 했지요(주4). 또는, 주목시키고 싶은 곳에 스포트라이트를 살짝 넣고, 실은 라이트 모양도 장면에 맞춰서 타원형이 되는 등, 섬세한 변화를 주었습니다. 캐시가 등장할 때의 음악 등 BGM을 넣는 방식도 무대 연출의 기법을 의식했고요. 그리고 캐릭터가 대사를 하는 ‘간격’을 미세하게 조정하거나, 움직이면서 말하게 해서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 것은 무대 위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것에 가깝다고 볼수 있죠.

주4:벽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다른 것은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매력적인 연출 기법은 사나다 마코토씨가 배웠던 연극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한 표현들은, 일찍이 사나다씨가 몰두했던 연극의 경험을 살린거라 할 수 있겠네요.

지나치면 안 좋은 의미로 연극처럼 보이기 때문에, 밸런스에도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다만, RPG 츠쿠루와 같은 2D 게임과 무대는 확실히 닮은점이 있죠. 3D 게임이나 영화에서는 카메라로 게임 안의 대상과의 거리가 변화하지만, 2D 화면과 연극의 무대는 모두 거리가 일정하잖아요. 디포르메된 표현을 구현하기 쉽다는 것도 닮은 점이죠. 저 자신도 거창하게 무대 연출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연극의 기법이 RPG 츠쿠루로 게임 장면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